월급도 많이 안주면서 일은 많이 시키는 회사지만, 한달에 한번씩 오아시스같이 오전근무만 하는 금요일이 있다. 그 날은 휴가를 안쓰고도, 또 오후 반차는 원래 2시부터인데 정오까지만 근무하는 날이므로 오후 반차보다 더욱 평일 오후시간을 매우 알차게 보낼 수 있는 날이다. 그렇지만 다들 직장인이 된 이후에는 나 빼고는 다들 근무하고 딱히 만날만한 사람이 없으므로 주로 회사 언니들과 아울렛에 쇼핑을 가거나 맛있는걸 먹으러 다녔는데, 그 언니들 대부분이 퇴사한 상황이라 또 같이 놀 사람이 없어졌다. 뭐, 그래도 난 혼자서도 잘 노니까. 그리고 요새는 누구 만나는게 귀찮기도 하구.

-
전날 너무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서인지 오전 근무하는 내내 엄청 졸리고 피곤해서 다 때려치우고 집에 가고 싶은데다가, 12시 5분 전에 점심 약속이 있던 친구가 갑자기 점심 컨콜이 잡혔다고 점심을 캔슬했다. 이 놈은 맨날 지멋대로야.
그래서 혼자 땀을 뻘뻘 흘리며 - 생각해보니 폭염주의보가 내린 날이다 - 유로 구루메에 가서 치즈가 잔뜩 들어간 라쟈나를 먹고 행복해졌다. 무려 18,000원. 후아- 요새 긴축중인데 오늘 폭풍 소비.. 흑

-
밥을 먹고 역시 또 땀을 뻘뻘 흘리면서 대림미술관으로 이동. 한 3달전부터 보려고 했던 전시인데 이제야 봤다. 아니 근데 평일 대낮에 사람들이 왜이렇게 많아? 나만 이렇게 힘들게 일하고 있는건가.
전시는 딱 생각한 만큼 좋았다. 더 좋은 것도 덜 좋은 것도 아니고. 처음엔 설명을 안듣고 전시를 쭉 둘러보고 그 다음엔 모바일 설명을 들으면서 다시 한번 봤다. 그리고 도슨트 시간이 맞아서 도슨트가 설명을 해주는 것을 들을 수도 있었는데, 개인적으로는 도슨트의 그 하이톤의 목소리가 너무 듣기 부담스러웠다. 나름 열심히 일하는 거니까 뭐라고 할 순 없는데, 트로이카는 소리가 굉장히 중요한 전시인데 그렇게 전시장을 울리는 마이크에 하이톤의 목소리의 도슨트가 끊임없이 말을 하니까 좀 짜증이 났다.
역시 제일 인기 있는 작품은 Falling light와 the weather yesterday 였을거 같다. 난 솔직히 The weather yesterday는 직접봤을때는 무슨 형상인지 잘 몰랐는데 사진을 찍고보니 구름이었구나. 저게 숫자구나. 하는 생각을 했음 -.- 이건 잘 몰랐지만 예쁜데다가, 작품의 취지가 맘에 들기도 해서 마그넷과 북마크를 샀다. 북마크는 두개를 샀는데, 하나는 누군가에게 선물하고 싶은데, 누굴줄지 고민되네.
개인적으로 젤 좋았던 작품은 Small bangs 였는데, 역시 사람이든 색깔이든 동물이든 한 가지 모습만 가지고 있는 건 없는 것 같다. 무수히 많은 색깔을 가지고 자신을 구성해나가는 거겠지.


-
또 땀을 엄청 흘리면서 서촌으로 이동했다. 가는길에 들리고싶은 가게가 많았지만, 노트북을 들고 있는데다가 이것저것 잔뜩 들고 박노수 미술관에서 전시 구경하기는 좀 싫어서 일단 모든 것을 미술관을 본 이후로 하자고 맘 먹고 계속 걸었다. 엄청 덥고 땀이 비오듯 쏟아졌는데도 기분이 나쁘거나 힘들지 않았던걸 보면 난 정말 더위에 강하긴 한것 같다. 물론 에어컨 바람이 쌩쌩 나오는덴 엄청 시원해서 좋긴했지만.

박노수 미술관은 엄청 아름다웠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미술관이 있다는게 기쁘고, 이런 아름다운 집을 시에 기증한 작가도 작가 가족들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외국인이 자원봉사 하고 있는 것도 놀라웠고. 나도 이렇게 고풍스럽고 아름다운, 선반 하나하나에도 오랜 정성이 묻어있는 이런 집을 만들고 싶다. 그런 집에 살고 싶다. 그런 집을 지어서 강아지는 2마리 정도 키우고 우리 초코랑 마당에서 놀게 하고, 생각을 많이 해서 생각이 깊은 할머니가 되었다가, 내가 죽으면 그 집을 예쁜 그림이 걸려 있는 카페같은걸로 개조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흐흐. 원래는 요새 만나는 그와 함께 오고 싶었는데, 같이 오지 않은 게 더 잘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랑 왔으면 그가 안좋아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조바심 내느라 이렇게까지 즐기지 못했을것 같다는 생각.

1층에 강가.. 였나 여튼 강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 몇개 있었는데 갑자기 그 작품을 보는데 약간 울고 싶어졌다. 요새는 자꾸 아무것도 아닌데 금방 울고 싶어진다.

-
다음에 들린 곳은 머핀연구소 고로롱.. 박노수 미술관 갔다와서 꼭 여기 들러야지 생각했는데, 걍 지나쳐버려서 한참 돌아서 다시 찾아갔다. 여긴 내가 몰래 몰래 스토킹하는 서촌 사는 블로거님의 블로그에서 본 곳이다. 체더치즈가 박힌 머핀 하나랑 아메리카노를 시키고 기다리는 동안 핸드폰으로 인터넷을 찾아보니, 블로그가 있다. 그리고 그 블로거님이 남긴 리플도 있음. 이런게 신기해. 당사자들은 내가 이렇게 친근하게 느끼는거 전혀 모를텐데. 흐

머핀은 진짜 맛있었다. 오랫만에 이렇게 달지 않고, 겉은 바삭하면서 안은 촉촉한 그런 맛있는 머핀을 먹었다. 가격두 싸구. 서비스로 키위 머핀 조각과 쿠키를 받았는데, 개인적으로는 과일머핀보다는 치즈나,, 뭐 이런게 좋은것 같다. 이건 순전히 개취. 우리 집앞에 이런 가게가 있으면 나 정말 VIP 될거 같아서 집에서 먼게 좀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집앞에 이런게 있으면 좋겠어. 흑  

-
다음엔 씨네코드 선재에 가서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을 보고싶었는데, 너무 피곤하고.. 피부과 예약 시간을 좀 땡긴게 생각나서 그냥 홍대로 돌아가기로 했다. 돌아가는 길에 버스를 어디서 탈까 하면서 한참을 걸었는데도 집에 가는 버스가 서는 버스정류장이 없어서 한 30분은 넘게 땀흘리며 걸었다. 근데 그것도 그 나름대로 기분 좋음.

-
피부과에서 치료를 받고 마지막 코스는 역시 카페 꼼마에 와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먹으면서 포스팅.. ㅋㅋㅋ 사실은 원래 할일이 있었는데, 또 조금 하면 하기 싫어진다. ADHD인것도 같고. 후아. 더불어 여기 와서 딸에게 보내는 심리학편지 라는 책을 읽고 있다. 이 책, 중간 챕터 중에 "지금 불안하다면 인생을 잘 살고 있는 증거다" 라고 써있는 말이 있어서 그냥 그 말 한마디 보고 샀다. 근데 엄청 위로가 되는 책이다. 리뷰는 나중에 다 읽고 써야지.

-
벌써 저녁 7시가 됐다. 오늘 꽤나 행복하고 알찬 하루를 보냈고 마음도 조금 정상으로 돌아온 것 같다. 언제 다시 우울의 나락으로 떨어질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조금씩 올라가고 있는 것 같다. 얼마전엔 진짜 너무 힘들어서 정신과 상담이라도 받아야되나 하고 상담프로그램을 막 찾아보고 자가 테스트도 해보고 했는데, 그래 난 이렇게 정상인 기분으로 돌아가려고 노력을 이정도로 하고 있으니까 곧 괜찮아 질거야 라는 생각을 했다. 요새 독서량이 엄청 늘었는데, 역시 기분을 정상으로 만들어주는데는 독서가 제일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음.. 블로그질도 꽤나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 든다. 역시 뭔가를 끄적이다보면 정리가 되는 기분이니까. 오늘도 잠들때까지 이렇게 fine한 기분을 유지할 수 있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