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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Dairy 2014. 8. 4. 19:55

요새는 아무것도 아닌게 종종 위로가 된다. 예를 들면, 리어왕에서 리어왕이 죽을때 코딜리어가 살아있다는 착각을 하고 행복속에서 죽음을 맞이했다는 해석이 있다는 거라던지, 머핀을 먹으러 갔는데 서비스로 잘 구워진 쿠키를 얻어먹었다던지. 마스다 미리의 수짱시리즈 보면, 시리즈 중 어떤 책인지는 잘 기억 안나지만, 마이짱이 병원에 갔다가 병원에서 "요새 일이 좀 많았나봐요." 였나 뭐 이런 얘기를 의사에게 듣고 울컥하는 장면이 있다. 아무것도 아닌데, 아무 관계도 아닌 사람이, 내 상황을 알아준다는 것은 상당히 위로가 되는 일인 것 같다. 요새 내가 너무 우울해하니까 주변에서 막 열심히 위로해주려고 노력하는데, 그런 말들이 위로가 된다기 보다는 위로를 해주려고 하는 행위 자체가 위로가 된다. 말은 공감하지 못할 때도 많음. 여튼 그래도 다들 고마워. 이렇게 챙겨주고 얘기해주고 걱정해주는 좋은 사람들이 주변에 있어서 다행이야. 고맙다는 말을 많이 많이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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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어쩌다보니 서울역을 들러서 출근하게 됐다. 어쩌다보니.. 까지는 아니고... 뭐.. 그렇게 됐는데.... 비가 엄청나게 쏟아지는 월요일 아침 출근길은 엄청 힘들구나, 뭐 이런 생각을 하면서 출근을 하는데, 뒤에서 어떤 아저씨가 확 밀어서 넘어졌다. 그리고는 미안하다는 말도 안하고 그냥 가버림. 다치진 않았는데, 우산을 놓치는 바람에 완전 다 젖은 채로, 젖은 물미역 마냥, 서울역 한복판에 앉아있는 형상이 되었다. 그 와중에 흰 자켓 입고 왔는데 젖어서 색깔 변하면 어떡하지, 드라이 새로 하고 처음입은건데 또 드라이 맡겨야되나, 아 내 구두는.. 뭐 이런생각을 했다. 약간 어쩔줄 몰라하면서 일어나려고 하니 어떤 아줌마가 우산을 씌워주며 나를 밀쳐낸 아저씨에게 욕을 했다. 나쁜 싸람. ㅠㅠ 그 순간에는 당황해서 아무 생각 못한채로 우산 아줌마한테 고맙다고 대충말하고, 서울역안에 들어가서 화장실에서 젖은 몸을 닦고 머리를 닦는데 갑자기 눈물이 좀 날것 같았다. 그 상황에서 그 아저씨한테 아무말도 못하고 멍때리고 비를 맞은 내가 너무 한심하고, 지금 서울역 공중화장실의 거지같은 휴지로 몸을 대충 닦고, 휴지가 몸에 붙어서 나는 막 그걸 또 떼려고 하고 있는데다가, 그 와중에 출근해야되는데 늦으면 어떡하지 으앙 막 이게 뭐지 하면서 눈물이... ㅠㅠ 그치만 이렇게 울고싶어질 때는 항상, 다 컸는데 지금 울면 뭐가 되나 싶어서 꾹 참는다. 잘 참으면 나름 또 기특함. 그 와중에 출근은 꾸역꾸역 열심히 해서 지각은 면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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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끊어야겠다. 술 마시고 걍 행복해지면 괜찮은데, 요새 자꾸 술 마시면 취하고, 취해서 쓸데없는 말을 자꾸 하게 되는 것 같다. 첨엔 기억이 안나다가 조금씩 조금씩 기억이 돌아오는데-_- 너무 생각 없이 말해서 어쩌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해보인다고 해서 진짜 다 강한것도 아니고, 상처 안받는 것도 아닌데. 물론 진짜로 상처 안받을수도 있는데, 그래도 상처 받을 수도 있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드는 말을 타인에게 하는건 역시 좋지 않다. 미안해. 반성. 사과해야지.

 

고등어를 금하노라에 있던 말,

우리 부부는 평생에 걸쳐 무수한 상처를 주고받았다. 서로에게 적응하지 못해 성욕의 주기가 곧잘 어긋나곤 하던 시절에 우리는 간혹 짜증 섞인 혹은 노골적인 무시의 눈길로 상대방을 거절했고, 이것은 각자의 마음속에 상처로 남아 있다. ……
묵은 상처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위한 내 나름의 방법은 ‘따지지 않는다’이다. 핑퐁을 주고받는 와중에 튀어나간 공이 누구의 라켓에서 튀어나갔는지를 따지는 것은 닭이 먼저인지 알이 먼저인지를 따지는 것만큼이나 무의미하다. 우리가 만든 공동의 상처라고 생각하면, 내가 입은 상처가 덜 원통하고 내가 입힌 상처가 덜 부끄럽다. ……
나는 사회적으로는 공정하고 정확한 과거 청산을 부르짖는 사람이지만 부부 관계에서는 그러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는 주관과 감정으로 얽힌 동네지 공정성이나 정확성이 지배하는 동네가 아니기 때문이다. 가끔 남편이 우리의 과거에 대해 황당무계한 소리를 할 때가 있는데 이럴 때 나는 “그런가?” 하고 만다.   ... --- pp.271~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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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긴 우울의 터널에서 벗어나고 있는 느낌이다. 아직도 순식간에 무너질 때도 있지만, 나름대로 고군분투 하고 있고 그 결실도 조금씩 보이는 것 같다.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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