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빳사나 명상 후기
from Dairy 2017. 4. 26. 15:48


지금부터 작성하는 내용은 4월 14일부터 11박 12일간 경험한 위빳사나 명상에 대한 후기이다.

위빳사나는 보리수 나무 아래서 부처가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는 명상법으로, 개인에 대한 메타인지를 키우는데 아주 유용한 방법이라고 한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여러가지 일들과 맞닥드리게 되는데, 그 때마다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지 못하고 마음이 이리저리 날뛰는 바람에 고통속에서 살게 된다. 위빳사나를 배울 때는 좋은 일들에 대해 기뻐하는 것 역시 집착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기쁜일이든 슬픈일이든 똑같이 좋지 않은 것이라고 하는데, 특히 슬프거나 원하지 않는 일들이 발생할 때 마음의 고통이 더 크게 느껴진다. 그래서 위빳사나는 날짐승처럼 날뛰는 마음을 훈련하여 어떤 일이 발생하더라도 고통을 덜 느끼고 행복하고 평온하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한다.

나의 경우에는 최근 몇년간 여러가지 불안과 걱정, 괴로움이 있었고 최근 몇개월은 그러한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여 결국 더이상 일을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꼭 위빳사나가 아니어도 마음을 다스린다는 많은 방법들이 있고, 다양한 명상법들이 있었고 그 중에서 뭐라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다만, 시간과 비용 등을 고려했을 때 마침 휴직도 한 김에 담마코리아에서 진행하고 있는 위빳사나 명상을 가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고, 결과적으로는 아주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된다.

#하루의 기록

Day 0.
명상센터는 전북 진안군에 있고, 서울에서 센터까지 가는 방법은 버스와 기차가 있다. 나의 경우는 용산역이 집에서 가깝기도 하고, 기차가 주는 로맨틱함이 좋아서 기차를 이용했다. 용산역에서 기차를 타고 전주역으로 이동한 후 전주역 앞에서 무진장버스를 타고 (이름도 귀엽다!) 한 30분 정도 산길을 달리면 어떤 길에 내려준다. 그 길에서 내려서 15분 정도 걸어가면 센터가 나온다. 전주역 앞에 있는 버스 정류장에 가면, 비슷한 행색의 여행자들이 몇명있는데 거의 다 동일한 목적으로 같은 곳에 가는 사람들이니 함께 따라가면 된다.

도착하면 몇가지 신청서를 작성하고, 책이나 필기구 등의 소지품을 맡겨두게 되는데 이 때 핸드폰도 함께 맡기게 된다. ㅠㅠ 핸드폰 없는 10일이라니..

Day 1~5

센터에 있는 동안 매일매일 돌아가면 하루하루를 잘 기록해야겠다는 일념으로 하루를 정리했는데, 써둘곳이 없다보니 그 기억들은 대부분은 휘발되고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매일 아침 4시~4시 반 정도에 기상해서 명상하고 밥먹고, 쉬고 명상하고를 반복하는데, 계속 스케줄이 있기 때문에 딱히 지루하거나 심심하지는 않았다. 쉬는 시간에는 각자 방에서 시간을 보내거나 씻거나 산책을 하거나 하는데, 나는 산책을 정말 열심히 했다. 날이 좋은 날에는 날이 좋아서 ㅋㅋㅋ 비가 오는 날에는 우산을 쓰고 정말 열심히 걸었다. 매일매일 같은 장소를 걷다보니, 매일매일 조금씩 달라지는 풍경에 반해서 행복감이 충만해졌다.

Day 6~8

매일 저녁 듣는 법문에는 2일째와 6일째가 사람들이 가장 많이 버티지 못하고 떠나는 날이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2일째는 괜찮았는데, 6일부터는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간 잊으려고,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많은 일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일 많이 한 생각은 회사 생각, 그리고 그와 관련된 J의 태도에 대한 생각이었다. 두가지 모두 서럽고 억울하고 슬픈 감정들이 떠나지 않았다. 너무 괴로워서 어떤날은 산책을 하다가, 어떤날은 침대에 누워서, 어떤날은 명상을 하면서 눈물이 났다.

수련생들은 선생님과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별도로 주어지는데 (신청한 경우에 한해서), 나는 이러한 생각들에 대한 질문을 했다. 명상할때도 생각이 떠올라서 명상에 집중할 수가 없는데 괜찮은지.. 선생님의 대답은, 그것을 생각 안하려고 노력하면 안할 수 있지만, 그런 것 보다는 오히려 생각이 나면 그것을 더욱 더 관찰해 보라는 것이었다. 물론 위빠사나 명상방법에 따라,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그저 관찰하기만. 바다에 쓰레기를 버리면 언젠가는 그 쓰레기들이 다 되돌아 오게 되는데, 지금은 그 쓰레기들이 되돌아 오는 과정이고, 이걸 하나씩 주워서 버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과정은 매우 고통스럽고 힘들었다.

Day 9

9일차에는 그러한 감정이 더욱더 폭발하여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마구마구 들었다. 명상을 하는둥 마는둥.. 심지어 방에서 짐도 쌌다. -.- 그렇지만 하루만 남았으니 조금 더 참아보자는 의지를 갖고 저녁명상을 했는데, 그 순간이 참 다행스럽게도 마음을 평온하게 해주는 시간이 되었다.

Day 10

10일차에는 침묵이 해제되고 대화를 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사람들과 9일간 있었던 일들에 대한 소감을 나누고 수다를 떨면서 즐거운 하루를 보낼 수 있다.

그리고 그날밤을 잘 자고나면 드디어 핸드폰을 돌려받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다.


#깨달음

그 전까지 깨달음이란 마치 심봉사가 눈을 뜨는 것과 같이 한번에 이루어지는 경이로운 체험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명상을 하면서 느낀 것은 한번에 모든 것을 깨닫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사건에 하나의 깨달음. 그리고 수없이 많은 일들에 대한 깨달음. 하나하나를 풀어가는 과정 자체가 깨달음의 과정이라는 아주 당연한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위빳사나의 기본적 정신은 그 어떤 괴로움도 그대로이지 않다는 것.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걸 경험하는 것, 그 점에서 다른 철학적 지식을 얻는 것과 위빳사나 명상이 주는 가장 기본적인 차이점이다. 그치만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 모든것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는 거다. 다 내 마음안에. 마음먹기를 가능할 수 있도록 자신의 몸을 보고 직접 체험해 보라는 것이 위빳사나의 기본적 가르침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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